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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화 보이어리즘의 기회
Voyeurisme[vwa.jœ.ʁism] 1.엿보기 취미 2.타인의 정사 장면을 훔쳐보는 변태성욕
나는 꽤나 자주 엉뚱한 질문을 던지고, 답하는 것을 즐긴다. 질문 내용들이 늘 보편적이지는 않다 보니, 이상하게 보일까 걱정되어 대개 혼자 주고받거나, 나만 보는 작업 노트에 남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정 표현하고 싶어질 때는 그림으로 그려버리면 그만이다.
이렇게 적고 보니 왠지 비굴해 보인다. 그래서 굳이 또 다른 변명을 더하자면, 시작하기도 전에 외부의 반응에 부딪히는 것이 아쉽기 때문이다. 질문도, 이에 대한 대답도 스스로 살이 붙고, 조금이라도 오래 규율이나 테두리에 얽매이지 않았으면 한다.
하지만 글을 쓰기로 한 이상,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일에 익숙해져야만 한다. 그래서 지금 쓰고 있는 글에서부터 질문을 던지고 답해보는 것이다.
글쓰기는 뭐랄까. 포르노그래픽적이다. 마치 내가 몰래 들여다본 것을 들킨 듯한 낯 뜨거움이랄까. 내가 어떤 질문을 던지는 순간, 혼자 보고 있던 대상은 타인에게 노출되어 나의 취향이 세상에 공공연히 드러나게 된다. 특히 그 대상이 사람들 사이에서 보편적인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것이라면 무안함은 배가 될 것이다. 글쓰기 작업은 얼굴이 달아오르면서도 동시에 쾌감을 느끼게 되는 일인 듯싶다. 그럼에도 내 글이 어딘가 현대적 보이어리즘(Voyeurisme, 관음증)의 쾌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면 좋겠다. 화끈거림은 늘 따라다닐테지만.
이처럼 내가 글쓰기에 대한 뜬금없는 고백을 하게 된 이유는 뜻하지 않게 수술이 미뤄지며 생각할 시간이 생겼기 때문이다. 덕분에 태아와 피브롬이라는, 서로 비슷하면서도 전혀 다른 두 존재에 대해, 그리고 그들이 각기 다른 시기에 공유했던 자궁이라는 공간에 대해, 여느 때와 같이 무지막지한 상상과 질문들이 튀어나왔다. 이 둘을 모두 경험해 본 경험자로서 말이다.
물론, 나중에는 무슨 질문을 했고 어떤 답을 얻었는지 생각이 안 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 과정은 굉장한 중독성이 있고, 나름의 효용이 있다. 들쑥날쑥한 생각을 잠재워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나는 종종 이 방법을 사용하는데, 이번에도 그랬다. 수술 예정일을 넘기면서 피브롬은 나에게 태아의 가장 내밀한 비교군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자궁 적출”이라는 단어가 주는 찝찝함에 대한 원인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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