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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6-1화 먼 옛날 어느 별에서 나올 때

완벽한 우주, 자궁의 기억

나는 지금까지 수술 결정을 위해 4명의 의사를 만났다. 두 명은 남자였고, 두 명은 여자였다. 벨기에는 산부인과 진료 의사와 수술 의사가 분리되어 있는데, 나의 주치의였던 여 의사는 관찰 중이던 피브롬의 크기가 커졌다며, 수술이 가능한 남 의사를 추천해 주었다. 첫 번째 의사와 상담을 하고 수술 날짜를 예약했지만, 다음 날 이를 취소했다. 3년이 지나 두 번째로 추천받은 여 의사도 만났지만, 오진으로 인해 신뢰를 얻지 못했다. 올해 10월, 마침내 나의 피브롬을 꺼내줄 세 번째 남 의사를 만났다.

처음에는 “굳이 수술을 받아야 할까?” 라는 생각부터 들었다. 당시 나는 대부분의 건강 상태를 자가 치유로 관리하고 있었다. 늘 스스로 몸이 어떤 상태인지 신경을 썼는데, 덕분에 몸이 아프기 전에 필요한 조치를 취해 1년에 남들이 한두 번 걸리는 감기도 걸리지 않았다. 나는 법정 스님, 아인슈타인, 스티브 잡스와 같은 위대한 사상가들이 마지막에 치료를 거부했는지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들은 누구보다 예민하게 자신의 몸에 귀 기울이는 사람들이었고, 그 어떤 의사보다 더 자신의 몸을 잘 알았기에, 어느 순간 의학적인 방식이 더 이상 의미가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을 것이다.

나는 그들과 같은 고도의 능력을 가진 사람은 아니다. 다만, 어릴 때부터 몸이 작고 아플 때가 자주 있었는데, 그림 작업에 필요한 육체적 노동과 아이를 낳은 뒤 여러 건강 문제가 겹치면서 몸에 대한 감각이 예민해졌다. 팬데믹 직전에는 이유를 알 수 없는 통증과 불편함이 심해 심장, 폐, 피부과 등 다양한 전문의를 찾기도 했지만, 원인을 찾지 못했다. 그러면서 점점 더 스스로 몸의 반응을 의식하게 되었다.

몸이란 굉장히 복잡한 시스템이기에, 단지 몇 가지 보여지는 증상과 단편적인 설명만으로는 의사들이 내 몸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해왔다. 특히, 짧게는 5~10분, 길어도 20분을 넘기지 못하는 진료 시간 동안 내 몸을 온전히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게 느껴졌다. 이런 생각은 그림을 그리면서 더욱 구체화되었는데, 몸과 정신의 상태가 고스란히 캔버스에 드러나는 것을 매 순간 관찰하는 유일한 사람으로서, 그렇지 않게 되는 일이 오히려 이상해 보이기도 했다.

피브롬의 존재를 알게 된 이후에도 나는 이런 방식으로 몸의 증상을 관리해 왔다. 아침 요가나 물구나무서기 같은 방법으로 저혈압과 빈혈 증상을 조절했고, 몸의 작은 변화들을 민감하게 감지하며, 식이 요법과 신체 리듬의 균형을 통해 예방하고자 노력했다.

자궁 적출술(Hysterectomy) : 자궁을 제거하는 외과적 시술. 자궁 근종, 자궁 탈출증, 자궁 내막증, 암 등 다양한 부인과적 질환 치료가 목적

- WHO 정보 제공

하지만 자꾸 커지는 피브롬만큼은 내 힘으로 어쩔 수 없었다.

수술을 받기 위해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일은 "찝찝함”이었다. 이는 내가 그것에 대해 모르는 것 투성이였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적출”이라는 단어는 듣기에도 거북했다. 이 말은 장기 밀매 따위에서나 들어보던 단어였다. 게다가 “적출”은 원래 존재하던 것을 분리하고, 뿌리째 잘라버린다는 의미를 담고 있었다. 이는 일반적으로 원래의 상태를 회복하거나 치료하려는 의학적 의미와는 확연히 달랐다. 마치 필요 없어지거나 해를 끼치는 것을 완전히 제거해 버린다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무엇이 대상이 되었든 이미 존재하던 것을 완전히 제거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제거될 위기에 놓인 나의 자궁 또한 해부학적으로 방광, 직장, 림프절 등 여러 기관과 연결되어 있으며, 수많은 신경계 및 혈관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자궁은 신호를 주고받으며 몸의 각 부분 및 뇌와 끊임없이 상호 협력하고, 몸의 구석구석을 연결하며 혈액 순환과 호르몬 분비를 도왔을 것이다. 이러한 자궁의 존재는 그들 사이에 물리적, 화학적으로 기억될 수 밖에 없다.

이러한 의학적 설명을 차치하더라도, 이곳은 내 두 아이들이 각각 40주간 살았던 그들만의 완벽한 우주이기도 했다. 아이들의 신경 가닥 하나하나는 이 공간의 구석구석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며, 그들의 무의식 속에는 마치 꿈속의 한 장면처럼, 혹은 전생의 한 순간처럼 이곳의 흔적이 작은 세포 마디마디 새겨져 있을 것이다.

우리는 모두 이 장소에서 한때 살았다. 인류는 이 우주에 대한 기억을 모두 공유하고 있다. 그것은 어쩌면 우리가 기억하는 가장 온전하고 아늑한 장소였는지도 모른다.

이러한 ‘근원적’ 기억이 깃든 ‘공간’을 완전히 ‘제거’해야만 하는 걸까?

* 뉴스레터 뮈르뮈르 첫 번 에세이 “자궁에 대하여”는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 밤 12시 구독자에게 발송됩니다.